유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음에도 최근까지 승용차와 화물차 등에 쓰는 경유·휘발유와 여객기에 사용하는 항공유 등 유류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최근 원유 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을 앞지르는 백워데이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높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이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원유 수요는 올해 하루 평균 1억180만 배럴로 지난해 하루 9990만 배럴보다 2%가량 늘어 역대 최대를 나타낼 전망이다. 항공유 경유 등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달 정유사의 정제마진이 8년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과 인도, 한국 등의 정유사들은 석유제품 수출을 위해 공장 설비를 대폭 가동하고 있다. 유가가 올랐음에도 수요가 유지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이 대폭 오른 물가에 적응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작년에도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나들면서 각종 생활물가를 밀어올렸다.
미국 정부는 전략비축유 방출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비축유 보유량은 3억5000만 배럴가량으로 40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지난해 미 의회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담합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노펙’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지만 시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우디 등 산유국들뿐만 아니라 미국 석유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재를 시행한 결과 큰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초래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석유 재고 역시 한 달 사이 7630만 배럴 감소해 지난달 말 기준으로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은 가장 많은 2080만 배럴의 원유 재고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유가 오름세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OPEC 내에서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이 생산을 늘리고 있고, 가이아나 등 신흥 산유국 유전에서 생산을 본격화할 예정이어서다. 분석업체 세밥의 한 분석가는 블룸버그TV에 “브렌트유가 배럴당 110~120달러까지 오르면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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